*** 이 연재글은 2011년 연재되었다가 삭제했던 글로 오늘자로 다시 등록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BBK 의혹의 불씨는 꺼질 것인가 말 것인가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미 세인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진 것일까요.

글의 서두이지만 이들의 역학관계를 둘러싸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국에서의소송과정. (주)다스와 옵셔널캐피탈과의 마지막 혈투가 큰 키를 쥐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네요.

아무튼 워낙 그 방대한 자료들과 얽히고 설킨 관계속에서 그 해석과 접근 자체가 의외로 제한적이었거나 너무 난해했다는 점에서 ‘BBK’라는 한 단어만 유명해졌을 뿐 그 실체는 아직까지 미궁 속으로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처음으로 돌아가 발생시점부터 찬찬히 풀어서 생각해 본다면, 까짓 ‘BBK 의혹’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결론을 감히 상상해봅니다.

또한 (주)다스와 옵셔널캐피탈, 그리고 MB(대리인 김백준)가 미국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 법적자료 등을 토대로 얼마만큼 그 실체와 진실에 정확히 접근했는가를 언론인의 한사람으서 반성의 시각도 덧붙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감안해 이 글은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 여러들에게 더 많은 법정자료와 증거물 등 살아있는 싱싱한 재료들로 새로운 재해석의 물꼬를 제시할 겁니다.

이는 BBK 탄생의 출발점에서부터 면밀한 분석과 보다 이해가 쉬운 자료들, 그리고 가끔은 세간에 떠도는 재미나는 뒷이야기(?)들로 무엇보다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고자 함입니다.

이른바 ‘BBK 의혹’을 마스터(Master)할 수 있는 기회.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에리카 김 씨와 MB(이명박)의 만남, 그 진실과 뒷이야기, 그리고 LA의 한 주택이 훗날 문제의 옵셔널벤쳐스 미주 본사로 등재되는 등 그 중요했던 초기배경을면밀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자! 그 첫 이야기,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BBK 탄생의 시작-제1화>

아직까지 ‘BBK 의혹’이라는 단어와 함께 세인들의 끊임없는 관심사가 되고 있는 에리카 김 씨와 MB.

우선 BBK 의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 두사람의 첫 만남, 그리고 향후까지 이어진 인연(?)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바로 ‘BBK 이슈’로 들어가기보다 99년이 돼서야 등장하는 BBK의 존재성을 감안했을 때 상당한 시간적 갭이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1994년으로 먼저 거슬러 올라갑니다.

ⓒ Sundayjournalusa

잘 알려진대로 두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LA 나성영락교회의 신앙간증회 장소에서입니다. 위 사진에서 보여지듯 나성영락교회 한복판을 거니는 두사람의 모습은 처음 만난 사이치고는 다정했다고나 할까요. 사진의 각도, 촬영자의 의도 등을 신중(?)히 이입해 감안하면 이미 한두번 가량 안면식은 있었던 사이로 해석됩니다.

아무튼 이 때가 1994년 4월경이니까 64년 생인 에리카 김 씨가 갓 30대에 다다른 서른살, 41년생(12월 19일생)인 MB는 쉰 세살로 50대인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두사람의 나이차는 23살 터울이 정확하네요.)

이 두사람의 연결고리는 한때 한미신용정보 사를 이끌었던 이동연 회장입니다. LA 터줏대감 사업가로 늘 수완(?)이 좋고 인맥을 잘 활용하는 등 희한하게 신규사업을 잘 확장하는 특이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 인사입니다.

이동연 씨는 지난 2004년 5월 김경준 씨가 미국에서 한미범죄인 인도조약에 의거해 체포됐을 당시부터 이미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아무래도 두사람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죠.

최근 저와의 통화에서도 아직 남아있는 비밀 이야기들과 관련, 왠지 플러스 알파(?) 파장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이색 반응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동연 씨는 1994년 당시 LA에서 최고 부촌으로 손꼽히는 프레몬트 게이트(Fremont Gate) 단지내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미 세간에 소문과 기사화돼 유명해졌듯이 훗날 바로 이 저택에 비치돼 있는 노래방 시설에서 에리카 김 씨와 MB 등 지인들이 회동을 자주 즐겼다고 합니다.

항간에는 “MB와 에리카 김 두사람이 진하게 블루스를 즐기다가 이를 지켜보던김윤옥 여사가 ‘도에 지나치다’며 버럭 화를 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동연 씨는 “노래방을 함께 즐긴 것은 사실이나 김윤옥 여사와 관련된 소문 등은 와전된 것이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지난 대선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2007년 에리카 김 씨는 시사 IN 주진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MB와 특별(?)한 관계임을 암시하는 발언도 은연 중에 했다지요.

아울러 이러한 특별(?) 관계를 폭로할 의사까지 끝내 전했던 것으로 기사화됐었습니다. (물론 사실관계는 검찰 발표 등이 불리하게 전개되면서 끝까지 발표로 확인돼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었지만…)

ⓒ Sundayjournalusa

바로 위 사진이 MB 부부, 에리카 김 부부, 이동연 회장이 LA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프레몬트 저택 앞에서 함께 촬영했던 순간이 포착된 사진입니다.(여러 정황을 봤을 때 에리카-MB 두사람 모두 나성영락교회 간증회에서 찍은 사진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을 봤을 때 1994년 4월 어느 같은 날로 보여집니다.)

결국 이렇듯 미주 지역에서 20년을 넘어선 우정(?)의 친분을 쌓아왔던 두사람. 지난 95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에리카 김의 자서전격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회에서 유부녀 에리카 김 씨의 남편, 김 씨의 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메인 케이크 커팅자로 나서는 초절정(?) 친분을 과시합니다.

▲지난 95년 11월 에리카 김 변호사의 자서전격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9월 출간)’ 서울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명박 씨. 김 씨의 전 남편, 부모님과 함께 다정히 손을 모으고 케익을 커팅하는 사진. ⓒ Sundayjournalusa

이유야 어찌 됐든간에 현재 에리카 김 씨는 우여곡절 이혼을 하게 됐고, 현재는 이혼후 만난 내연남 민 모 씨와의 친밀한 연인관계를 LA에서 과시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이죠. 어제 제가 속보 등을 통해 상세히 전해드린대로 민 씨의 사업체 SM 글로벌 사와는 이상한 연결고리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 다시 한번 짚고넘어갑니다. 저의 의혹제기 이후 이들 두사람은 발빠르게 수정조치를 취하는 등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전 남편인 리차드 안 씨와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으며, 두사람은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 2000년대 초반 들어 끝내 이혼함으로써 영영 남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는 이상한 풍문도 나돕니다.)

이렇듯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 의사 배출(?)의 산실인 안 씨 집안과 연을 맺었던 에리카 김 씨. 끝내 무슨 연유에서인지 미국에서의 룰도 무시(?)한 채 ‘김(KIM)’이라는 성을 지닌 채 이혼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녀의 책 ‘나는 언제나 한국인’을 보면 ‘미혜’라는 한국 이름 또한 늦게까지 사용하는 등 나중에서야 ‘에리카(ERICA)’라는 영어이름을 사용한 것을 봤을때 에리카 김 씨의 상당한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전 남편 안 씨는 신경내과 전문의로 완전히 영어권이라 한국말이 서툴렀다고 합니다. 그는 학자 스타일에다가 내성적인 면을 지녀 어찌 보면 에리카 김 씨와 정반대적 성격이 오히려 좋은 궁합을 만들어 오랜 결혼생활이 예상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엉뚱한 곳에서 파편(?)이 터지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측근지인들의 전언입니다.

최근 본 기자와 만난 안 씨 측의 먼 친척들은 “달라스에서 모든 걸 잊고 재혼해 잘 살고 있는 아이(전 남편)를 괜히 이슈화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뒤 “에리카 김 씨의 복잡했던 남자관계(?)가 둘사이의 발목을 잡았다고만 이해해달라”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한 부질(?) 없는 과거사를 자꾸 언급하는 이유는 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니 독자들의 깊은 양해와 아량을 부탁 드립니다.

아울러 전 남편 안 씨의 이야기는 오늘로 꼭 접기로 하죠.(실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상에 얼굴이 공개된 사진이 떠돌고 있고, 어느 정도 신분이 노출된 상태임을 감안한 것이니 부디 이해해 주시길…)

전 남편과 매입했던 저택
훗날 옵셔널벤쳐스 미주본사로 둔갑되기까지

▲ 555 S Irving Blvd. 소재 한 고급저택의 최근 모습(2011년 10월 28일 촬영). 에리카 김 씨가 전 남편과 함께 매입했다가 본인 명의로 전환한 뒤 지난 2001년에는 옵셔널벤쳐스의 미주본사로 등록돼는 희한한 운명을 지닌 부동산이다. ⓒ2011 Youstarmedia

전 남편 안 씨-에리카 김 두 부부가 지난 1996년 4월 10일 자로 63만 5천 달러(1차융자 50만 달러)에 매입했던 LA의 한 고급주택.

제가 확보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1924년 생으로 방 6개, 화장실 4개를 갖췄으며, 총 대지 19,258스퀘어피트(약 541평), 건평 5,400스퀘어피트(약 151평)에 달하는 고급 저택입니다.

물론 전 남편 안 씨가 신경내과 전문의인데다 에리카 김 씨 본인 또한 당시 유명변호사로서 충분한 수입원 등 저택을 매입할 만한 기반조건을 갖췄던 것으로 관측됩니다.

우선 결론적으로 2003년 11월 4일 자로 161만 1천 달러에 매각했으니, 50만 달러 1차 융자금을 빼더라도 매입 7년여만에 100만 달러 이상의 부동산 매매 차익을 올린 효자였지요. 근데 문제는 이 저택의 매각 차익은 에리카 김 씨 혼자올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문제의 저택 등기부등본 히스토리를 입수해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일반인들이 봤을 때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한 깜짝 거래가 숨겨져 있어 주목을 끕니다.

이는 무엇보다 1998년 3월 6일 에리카 김 씨가 전 남편 안 씨에게 5만 달러 융자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모기지 히스토리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부부사이의 채무관계를 놓고 법적 근거절차를 밟아 놓았다는 점. 아무래도 이 시기부터 어느정도 두사람의 부부관계가 삐걱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1999년부터 BBK는 태동되기 시작하고, 김경준-에리카김 씨 가족 측 과거 주장대로라면 이 시기부터 MB와의 사업관계가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죠.)

아무튼 이러한 연유인지 1999년 2월 12일 부로 두사람 사이의 저택 매매관계가 형성됩니다. 전 남편 안 씨는 에리카 김 씨에게 이 저택을 완전히 무상양도하게 되며,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같은날 새한은행으로부터 김 씨가 10만 달러를 융자했다는 사실.

이후에도 같은 새한은행에서 지난 2000년 1월 3일 추가로 15만 달러를 융자한 기록 또한 다른 서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1 Youstarmedia

사실 이 저택이 지난 99년 에리카 김 씨에게 거의 무상으로 넘어가게 된 배경에는 ‘조용한(?) 이혼’을 바랬던 전 남편 집안에서 거의 이혼 선물로 건넸다는 가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전 남편 측의 한 친인척은 “신경내과 전문의인 전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밤샘을 할 때도 있었는데, 이 집에도 MB가 자주 들락거렸던 것으로 안다”며 “물론 전 남편 안 씨와 MB도 무척 가까웠었다”고 부연설명했습니다.

아무튼 문제의 이 저택,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동연 회장 저택과의 거리는 불과0.9마일(1.4킬로미터)입니다. 차로 운전했을 때 겨우 4분 거리라 에리카 김 씨와 MB,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이 자주 양쪽 집을 오가며 회동을 가졌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저택은 결국 아직까지도 세간의 가십거리로 회자되고 있는 에리카 김 씨와 MB와의 잦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던 겁니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이 집을 매각한 시기가 지난 2003년 1월. 현재 에리카 김 씨의 최고가(?) 재산목록으로 꼽히는 베버리힐스 저택을 매입한 시점이 2002년이란 점에서 다소 의문이 생겨납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차츰차츰 되짚어 나가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이 저택이 재미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훗날 상세히 언급되겠지만, 주가조작의 희생양이 된 옵셔널벤쳐스 코리아를 설립할 당시 미주지역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로 활용됐다는 점입니다. 이때 에리카 김 씨의 동생인 김경준 씨는 모친 김영애 씨를 에이전트로 등록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요.

자! 이제 나머지 이야기들은 곧  다음시간을 통해 계속 이어가기로 하고, 부족하고 길었던 첫 시간의 스토리를 오늘 이쯤에서 끝낼까 합니다.